페미닌한 남자
여자친구의 손을 잡고 불쑥 들어온 그는 페미닌함과는 상당히 거리가 먼 모습이었습니다.
이 억지로라도 무언가 페미닌한 요소를 찾아낸다면, 그의 쑥쓰럽고 다정한 미소 정도였다고나 할까요.
하지만 얼핏 스치는 눈으로 보기에도 오히려 '여성성' 보다는 '남성성'이 강한 타입이었지요.
그런 그가 커플링으로 선택한 반지는 무척이나 의외였습니다.
요염하게 굽이진 우대에 영롱하고 눈부신 하이얀 지르콘이 세팅된, 그야말로 페미난함이 넘쳐 흐르는 디자인이었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두 개의 반지가 포개지는 형상으로 인해 더욱 극대화된 광채를 빛내고 있는 것과 동시에,
섹시하고 관능적인 느낌마저 드는 반지인 것입니다. 그 이름마저 "Love Position" 이지요.
사실 이 반지는 출시된 이래 남성 고객에게는 판매된 바가 없으며,
여성분들 중에서도 특히 여성스럽거나 화려한 분위기의 고객님께서 선호하시는 스타일입니다.
그래서인지 그가 조금 수줍은 얼굴로 "이 반지를 커플링으로도 하나요?" 라고 물어봤을 때,
저는 선뜻 자신있게 '그렇다' 라고 차마 대답은 하지 못한 채, 조금 난처한 표정을 짓고 말았지요.
그리고 그때부터 제 손과 입은 바빠지기 시작하였습니다.
"Love position" 이 아닌, 좀 더 매스큘린한, 아니 그나마 조금이라도 중성적인 디자인의 다른 반지들을
추천해드리고자 한 것이었죠.
허나 상냥한 그는 관심을 기울이는 제스쳐를 취하긴 했으나, 다른 어떠한 반지에도 진심으로 이끌려 하지는 않는 듯 보였습니다.
그리고 여자친구분과 함께 잠시 동안의 고민을 한 끝에, 결국 "Love position"을 커플링으로 택하고야 말았습니다.
어쩌면 처음부터 그의 대답은 정해져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어떤 반응을 보였든 간에 말이지요.
단지 사회에서 통용되는 젠더의 이분법적 색깔에서 조금은 이탈한 것 같은 자신의 선택이 약간 멋쩍은 나머지,
조금 주저했을 뿐이었던 것 같습니다.
커플링을 결정하고는 한층 만족스럽고 편안한 얼굴이 되어 쇼룸을 나서는 그의 뒷모습이 참으로 우아해 보였더랬습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그의 겉모습은 누가봐도 페미닌하게 섬세해보이는 남자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중성적이고 젠더리스한 분위기의 남자보다 훨씬 페미닌해보였죠.
그로 인해 내 관념 속에 자리잡았던 '페미닌한 남자'의 정의가 180도 바뀌게 되었습니다.
진정 페미닌한 남자란, 섬섬옥수 같은 손에 큐티클이 정리되어 있는 가지런한 손톱을 가졌다거나,
진주 목걸이를 한 남자 모델처럼 젠더리스의 패션을 하고 있는 것도, 조말론의 중성적인 향수 냄새를 풍기는 이도 아니었습니다.
겉모습과는 상관없이 여성성과 남성성이라는 성별의 경계를 허무는 확장된 사고를 지닌 남자,
사회의 통념상 여성스럽다 한들, 자신이 원하는 스타일이라면 대범하고 과감하게 시도를 할 줄 아는 남자야말로
진정 페미닌한 남자가 아닐까 합니다.
아니, 생각해보면 이 '페미닌한 남자' 라는 말 자체가 어쩌면 모순처럼 들리는 것도 같습니다.
여성스러운 것과 남성스러운 것도 그저 사람들이 규정지어 온 하나의 이미지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사람이란 X나 Y염색체에 따라 행동하고, 사고하고, 살아가기에는 너무나 자유롭고 유동적인 존재이니 말입니다.
여성스러운 남성, 남성스러운 여성이 특별하고 유난하게 여겨지지 않았으면 합니다.
이미 그러한 시대로 진입하고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요.
그런 의미에서, 더욱 화려하고 반짝이는 쥬얼리를 과감히 시도하는 남자 고객들이 많아지기를 바라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