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 원석
한 개의 돌덩이가 타들어갈 듯한 햇빛과 거센 폭우와 휘몰아치는 눈바람을 그저 묵묵히 견디고 있다.
그가 의지할 것이라곤 얼마간의 물과 공기이다.
그렇게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수십번 반복되는 동안 변함없이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인고의 시간을 버텨오는 사이 그 몸뚱이는 비록 군데군데 깎이고 떨어져나갔으나,
놀랍게도 풍부한 광채와 섬광을 번뜩이며 이제껏 본 적 없는 빛깔을 발산한다.
그리고 그 기나긴 인고의 세월을 버티기 위한 몸부림의 흔적인 단단한 힘줄이 그의 몸 안에서 여러 갈래로 뻗어나 있는데,
이는 그 돌이 마침내 본연의 색을 드러내기까지 버팀목이 되어준 근간이다.
이렇게 고된 인내 끝에 천연의 아름다움의 결실을 맺은 돌들은 인간들의 눈에 띄어 '천연석'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지고,
다시 깎이고 두드려져 일부는 장신구로서 새 인생을 살게된다.
천연석은 바로 자연이 인간에게 내리는 태초의 아름다움이다.
그리고 나 또한 그 혜택을 입은 인간 중 한명으로서,
천연석의 아름다움에 경의를 표하며 자연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작업에 임한다.
가공을 절제한 본연 그대로의 멋을 늘 추구해온 입장으로서 천연석은 더할 나위 없는 소재가 된다.
그 중 오로라빛을 머금은 신비한 푸른색의 원석, 레브라도 라이트는 꽤 오래전부터 애용해오고 있는데
레브라도 레센스라는 유색효과가 있어 녹색, 회색, 파란색, 노란색 등의 다양한 컬러의 스펙트럼을 지니고 있다.
그리하여 원석 덩어리를 깎을때마다 조금씩 빛깔을 달리하는 성질이 있기에 손을 대기 전에는 그 색을 간파하기 힘든
예측불가성이 나를 퍽 곤란하게도 그래서 오히려 설레게도 하는 아이러니한 감정에 빠지게 한다.
레브라도 라이트로 작업을 하다보면, 원석 안에 꼭 금이 간 것처럼 보이는 여러 개의 줄기가 도드라져 있는 것이 눈에 띈다.
이는 앞서 말했던 고유의 '힘줄'과도 같은 것으로 그것이 굳건히 견뎌온 기나긴 인고의 시간을 집약하여 보여준다.
초창기에는 꼭 금이 간 것처럼 보이기도 하여 어떻게든 줄기의 내포물이 없는 부분을 구하려 애쓰기도 하였으나,
머지않아 그것을 관두었다. 이 줄기는 다름아닌 그의 일부이며, 바로 자연의 결과임을,
또한 한낱 인간은 그것을 마음대로 어찌할 수 없음을 인정하였기 때문이다.
티끌 하나 없이 화려하게 반짝이는 합성 보석보다 자신의 본질을 가감없이 드러내는 천연석에 훨씬 끌리는 것은
마치 무척 살갑고 상냥하나 어딘가 가식이 베어 있어 영 정이 가지 않는 이보다,
투박하지만 매사 행동과 말투 하나하나에 진심이 담긴 이에 더욱 마음이 가는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우리 인간은 돌보다 훨씬 짧은 세월을 삶에도 불구하고 온갖 희노애락을 겪으며
잔잔하거나 큰 여러 개의 상처를 여기저기 얻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닌 우리가 삶을 열심히 살아온 증거이자 영광의 상처이다.
상처를 입어 본 사람이 또다른 상처받은 누군가를 보듬어줄 줄 아는 법이다.
천연석의 내포물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것은 그가 이리도 아름다운 빛깔을 내기까지의 과정을 여실히 보여주는 증표인 것이며,
그 흔적이 있기에 그가 '치유의 원석'이라는 이름으로 그것을 몸에 지닌 이의 마음을
가만히 어루만져주는 힘을 발휘하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