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 of Solitude
주말을 쉬고 난 뒤엔 더더욱 맹렬히 등교를 거부하는 나의 네살배기 꼬마 덕에 매주 월요일 오전은 한바탕 소란이 일고,
정오쯤이 되어서야 그 모든 분란이 빠져나간 집은 마침내 거센 폭풍이 비켜가 잔잔한 바람이 부는 평화로운 마을처럼 한소끔 고요가 찾아온다.
간단한 소일거리를 마친 나는 그제서야 한숨 돌리며, 한층 사뿐한 발걸음으로 문을 나선다.
바의 한쪽 끝에 자리잡고 서서 오버 추출된 에스프레소 한 모금을 마시자니 미미하게 남아있던 잠기운이 순식간에 달아남과 동시에
수액이 고루 주입되어 활발히 팔딱거리는 혈관의 움직임처럼 내 두뇌가동도 생생해진다.
이제 막 영업을 개시한 이곳은 원두 가는 소리와 함께 박자를 타는 듯한 낮은 보사노바 음악을 배경으로 모든 것이 아주 조용하고 느긋한 폼이다.
심지어 원두를 추출하고 잔을 내려놓는 바리스타의 손동작마저 어딘가 묵직한 절도가 있어, 나도 모르게 왠지 숨을 죽이게 된다.
구석자리의 어둠에 홀로 둘러싸인 채 그의 묵묵한 움직임을 가만히 응시하며 남은 에스프레소를 마저 들이키고는 그곳을 유유히 빠져나간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집 근처 미술관으로 목적지는 미술관 옆 정원이다. 뻗어있는 풀의 각도까지 고려한 듯 정갈하게 손질된
평일 오후의 정원은 무척이나 조용하다 못해 그곳에 있노라면 마치 잠깐 나홀로 동떨어진 섬에 고립되어 있는 것만 같을 정도이다.
정원을 한 바퀴 빙돌아 숲으로 이어진 어귀에는 아치형으로 깎은듯한 평평한 바위 하나가 뉘어져 있는데, 그곳이 바로 나의 비밀 지정석이다.
이따금 이곳에 앉아 디자인 스케치를 할때면 내 머릿속 무형의 상상이 완전한 암흑상태에서 빛에 감응하며 점점 색깔을 드러내는 필름처럼 좀 더 생생하게 형태를 잡아나간다.
아마 이곳은 아무런 소음도 잡음도 움직임도 없기 때문이리라.
그러한 평정의 세계에 얼마간 가만히 앉아있다보면 새삼 극도의 고독함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그런데 그 깊은 고독감이 바로 주기적으로 나를 이곳으로 행하게 하는 큰 요인이다.
나에게 고독은 마치 정신없이 흐르는 음악을 멈추어 별안간 평온함을 선사하는 '일시 정지' 버튼과도 같아서 나는 오히려 그것을 즐긴다.
그 일시 정지의 상태에서야말로 평소 눈에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며, 귀에 들리지 않았던 것들이 들리고, 머리로는 알 수 없었던 것들이 마음으로 이해되곤 한다.
때로 고독은 우리를 잠시 정지시킴으로서, 일상에서는 흐릿하기만 하던 것들을 비로소 뚜렷하게 떠오르게 하는 힘이 있는 것이다.
그 힘의 비결은 바로 '고립'에 있으며, 이는 늘 타인과 한데 섞인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이 고립의 시간을 가짐으로서 타인이 아닌 바로 우리 자신의 내면을 비로소 온전히 들여다볼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고독과 외로움 모두 '고립'된 상태라는 것은 동일하나, 고독하다고 해서 반드시 외로운 것은 아니다.
고독은 홀로 고립되어도 외롭지 않고 오히려 안정과 행복의 감정으로 벅차게 충만할 수 있음이다.
내 비밀 지정석 위에서 디자인한 것들 중 그 고독이란 것과 꼭 닮은 것이 있다.
보통은 외부에 세팅되는 기법과 달리 스톤을 반지 우대 안쪽으로 숨겨버려, 그 속에서 홀로 고립된 채 유유히 빛나도록 하였다.
스톤이 깊숙한 내부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잠깐 일시 정지하고' 차분히 들여다보아야 그 다채로운 스펙트럼의 색채가 비로소 생생하게 눈에 들어온다.
천천히, 시간을 두고, 계속 바라보고 있노라면 저 안쪽 중앙, 한가운데 세팅된 스톤이 마치 내 마음속 아주 깊고 내밀한 그 무엇처럼 고독하게 반짝인다.
이것을 보는 이들도 그렇게 멈춰 서서 시간을 들여, 잠시만 고독해주었으면 한다.
Solitude is the nest of thought(고독은 생각의 둥지다)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